알림마당

한국역학회 소식

[인터뷰] 한국역학회 기획 인터뷰 (5) 임현술 교수와의 대화

  • 작성자한국역학회
  • 작성일2019-05-21
  • 조회수3083

[인터뷰] 한국역학회 기획 인터뷰 (5) 임현술 교수와의 대화


한국역학회 제11대 회장을 역임하신 임현술 교수님과의 인터뷰가 2018년 5월 7일 오전 10시 30분 경주 동국의대 임현술 교수님 연구실에서 있었습니다. 다음은 교수님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자: 박수경교수(서울의대)
인터뷰 글.사진: 최영주(한국역학회)


"민청학년 사건, 나의 인생을 바꾸다."


- 첫 질문으로, 대부분은 임상의학을 선택하는데 왜 기초 학문인 역학을 선택 하셨나요?


 대학교 2학년 때 민청학년 사건이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에 연루되어 4개월 동안 서대문 구치소에 들어가 있었어요. 문리대생 같은 경우 사형도 받고 그랬죠. 그때 내가 여길 나가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할 테니 나가게 해달라고 했었죠.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마찬가지 였겠죠. 그 당시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저로써는 절실했죠. 서울의대생의 경우 엮기가 쉽지 않았는지 결국에는 다 나왔어요. 제가 8월 4일에 나왔어요. 다음해부터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나는 국민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걸 하자고 생각을 했었고, 그때부터 관심을 가진 분야가 예방의학이었죠.

- 교수님께선 예방의학과, 가정의학과, 산업의학과 이렇게 세 개 분야의 전문의가 있으신데 계기가 있으신지요? 
 그 이후에 송촌이란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농촌의료봉사 하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였는데 농촌에서 봉사 같은 걸 하는 것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농촌 활동을 하는 것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농촌에 가서 일을 하느냐, 근로자, 환경 병 이와 같은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 나한테는 고민거리 였어요. 
 졸업 후 고민하다가 적어도 인턴은 해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레지던트는 안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저하고 뜻을 맞춘 사람이 1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레지던트를 했어요. 그 친구가 레지던트를 하고 나서 나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왕에 봉사 하겠다는 생각을 한 이상 사회 약자를 위한 활동을 위해서는 레지던트를 하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 서울성모병원에서 직업 환경 역학으로 레지던트를 하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서울대 보건대학원으로 갔더니 고 김병익 교수가 조교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어떤 제안을 했냐면, ‘예방의학 레지던트를 하면서 보건소장을 하는 건 어떻냐, 보건소 경험도 하고 농촌도 좀 알고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 제안을 좋게 생각해서, 결혼 후 2년간 보건소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죠.
 그때 보건소 일이라는 게 대개의 경우 관리 쪽 일인데 관리하는 일이 정말 안되더라구요. 일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군수까지는 설득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 과정에서 막히더라구요.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나.’ 생각을 했죠. 굉장히 힘들었어요. ‘관리 (보건소장)는 해 봤자 도움이 안되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도 내가 보건소에 있으면서 한 가지 얻은 게 있는데, 제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여러 가지가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더 힘들어 지니까. (웃음)
그래도 그 때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역학조사를 하는 그것만은 좋아했어요. 가서 역학조사를 하는 것은 재미있더라구요. 그거는 식품이 라든지 물이 라든지 뭔가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걸 하면서 내가 논문 쓰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 논문도 꾸준히 썼고요.
이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조교로 가게 되었는데, 김정순 선생님만 조교가 있었어요. 내가 직접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보니 농촌 의학이 쉽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래서 ‘직업병을 전공으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 김정순 선생님이 ‘환경 및 산업역학을 하면 어떠냐’ 라고 제안을 했어요. 어차피 난 전염병 역학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던 차라, 환경 및 산업역학은 나 하고도 잘 맞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군대를 갔다 왔죠. 군대에서도 성실히 하니 소령으로 진급도 시켜주더라구요. 하하.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김정순 선생님께서 렙토스피라증 역학 조사를 하시다가 임상 의사들과 부딪힌 적이 있으셨나 봐요. 그 때 저한테 가정의학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시더라구요. 대개 사람들이 기초 하다가 임상을 하면 돈 벌려고 하나보다 하는데 난 돈 벌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역학을 더 잘하기 위해서 임상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가정의학을 하면서 직업병과 환경병에 대해 경험을 했어요. 상봉동 역학조사를 간다든지, 매향리 소음성 난청 조사를 한다든지 등…… 당시 1남1녀 자녀가 있었는데 레지던트라서 어려운 상황인데도 월급을 털어가면서도 역학조사를 하러 다녔고, 그 결과 카드뮴 중독 사망 사를 처음으로 사례 보고를 하게 됐죠. 그런걸 하면서 다른 교수와 부딪히기도 하였죠. 모든 게 100%가 되어야 맞는 거라 했는데 세상에 100%는 없었어요. 


- 포항으로는 어떻게 가시게 되었나요? 또 포항으로 가셔서 가장 중점에 둔 일은 무엇 인가요? 
 내가 인천지역 병원에 약 1년간 근무하였는데 그 경험도 역학조사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외국 가는 기회도 있었는데, 외국은 가고 싶지 않았어요. 직업병 같은 건 우리나라에 더 많은데 외국 가서 공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 미국에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았어요. 이후는 미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하하
이후 근무지 선택에 있어서 필드라는 개념을 생각하였는데, 당시 대학병원 중 필드에 나갈 수 있는 병원이 동국대 포항병원과 울산 혜성병원이 있었어요. 그 중 동국대 병원은 불교병원이라 간섭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었고 그래서 포항으로 왔어요. 

1990년에 여기 와서 우리나라에서 직업병으로 뭘 처음으로 발표할 수 있는가 그게 제일 고민이었죠. 그리고 역학조사하는 걸 가장 중점에 두었고, 뭔가 밝혀져도 왜 사람들은 이걸 알아 냈나 그걸 조사하러 또 현장에 찾아가서 물어보고 했어요.
예전에 김천에서 페데러스 피부병(Paederus dermatitis, 개미반날개라는 풍뎅이아목 절지동물의 체액에 의한 화학화상으로 생기는 피부질환)이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논문을 봐도 페데러스 피부병이 왜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잖아요. 김천에 가서 조사를 해보니, 지역주민이 자꾸 뭐에 물렸다고 오니까 피부과 의사가 뭐가 물었는지 잡아오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누구나 다 똑같은 거를 잡아 오더래요. 그래서 그걸 질병관리 본부로 보냈고 페데러스 피부병이 되었다는 거에요. 어떤 것의 역학조사도 답은 지역주민이 갖고 있어요. 우리는 그걸 꼭 알아야해요. 페데러스 피부병의 경우 나중에 논문을 쓸 수 있었어요.
 내가 처음 포항에 갔을 때 포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미리 나열을 쭉 했어요. 그런데 10년 뒤에 여기 경주로 왔는데, 기막히게도 그것들이 모두 내 눈 앞에 왔더라고요. 참 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방사선에 의한 암도 우리나라 최초로 보고했었고, 포항제철에서 코크스오븐에 의한 폐암도 최초로 보고를 했죠. 이걸 계기로 포스코가 건강증진에 뛰어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건강증진을 일찍 하는 회사가 되었 구요. 굉장히 기뻤죠. 규조토폐증의 경우도 최초로 보고했죠. 그 당시 특수검진을 하는 사람의 경우 관련 논문이 없었는데, 왜 그러나 봤더니 특수검진을 하고 나면 지쳐서 논문을 안 쓰는 거에요. 그래서 이럴 때 논문으로 쓰면 살아 있는 논문이 되겠구나 생각을 했었죠.
 그러면서 그때 가정의학을 할 때 카드뮴중독에 대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외국하고는 뭐 비교를 해볼 생각은 못했고, 다른 사람이 역학조사를 하는 것하고 한번 비교를 해 봤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거 같더라구요. 하하 근데 그런 건 내입으로 말 할 수가 없잖아요. 하하하
그러다가 1999년에 포항병원에서 경주동국의대로 발령받게 되었어요.


경주에 와서는 어떤 일을 주로 하셨나요?
 그래도 내가 직업병, 환경병, 군인병을 하겠다 생각을 했고, 그때 또 마침 원진레이온 역학조사도 참여하게 되었죠. 동아일보 기자가 김양호 선생을 찾아가서 원진레이온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 고엽제 사건이 터졌는데 그때는 바로 환자를 찾아갔어요.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었죠. 그 환자에게 고엽제로 인한 환경병이란 진단서를 써 주었죠. 그러자 전국의 모든 고엽제 환자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진단서를 받으러 오더라구요. 이틀째 되니 20명, 이후 30명씩, 내원하더라구요. ‘몇 년도 월남 참전하였고, 고혈압, 당뇨 등이 있으면 고엽제 역학조사가 필요함’이라고 적어줬어요. 그런데 이후 진단서가 엉터리다라고 해서 그 다음에는 진단서를 안 써 줬어요. 나중에는 국회에 제출된 진단서가 위조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접촉을 안 했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국민들이 힘들어 하는데 어느 누구도 진단을 안 해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좀 더 나섰던거죠.
 군인병도 하려면 보훈학회를 가야 돼요. 의사로써 유일하게 보훈학회에도 가입 했죠. 그리고 또 병원병-병원종사자의 질병, 임어민 질병 등을 연구하고 싶었고, 관련 건수가 있으면 바로 달려가서 조사를 했죠.
환경병의 경우는 상봉동 진폐증과 매향리 사격장 소음피해 역학조사를 했죠. 10년의 법정 증언을 했고 그것이 인정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매향리에 평화공원 조성하게 되는걸 보고 너무 좋았구요, 그걸 보고 결국 모든 것은 평화로 종결되어야지 서로의 알력으로 가서는 서로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중 2002년 포항병원이 문을 닫아요. 저희 때는 SCI 논문에 대한 개념을 들은 적도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 전문의가 세 개나 - 가정의학, 예방의학, 산업의학에 있어 가지고… 예방의학에 발표를 하려면 가정의학에도 발표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여러 발표를 하곤 했는데 포항병원이 딱 문을 닫으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세상에 기가 막히게 그런 게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 다 나와 있더라구요. 굉장히 기뻐했죠. 그건 내가 보여 드릴께요. (책 꽂이에서 논문을 하나 꺼내서 보여 주신다.) ‘예방의학회지 1991-2006 게재 논문의 분석 (정민수, 정동준 보건대학원)’ 이 논문에서 인용지수가 가장 높고 질이 제일 좋은 논문의 저자로 선정되었더라구요. 이것도 내가 본 게 아니고 누가 얘기 해줘서 알았어요. 여기 보면 임현술이가 제일 많은 논문을 썼고 질적으로 봐도 100%를 차지 했어요. (웃음)



​"역학 조사의 감은 현장에서!"

- 교수님께선 전국 어디서든지 사건이 터지면 가장 먼저 도착 하셔서 ‘역학 검사’ 역할을 하셨는데 교수님의 다른 많은 업적도 있지만, 국내에서 최초로 밝힌 질병들이 많습니다. 니코틴급성중독, 야토병(Tularemia), 유리섬유증 등, 새로 원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인데, ‘이것이 원인이다’ 하는 감이 있었나요? 
역학조사는 현장에 직접 가야지만 감을 얻지요. 실제로는 대개 역학조사를 잘 가지도 않을뿐더러 가도 뭔가 물어 볼 줄도 모르더라구요. 학생들이 식중독이 생겼다. 그런데 물어 보지도 않고 설문지만 하고, 설문 분석만 해요. 설문 분석은 단일 위험일 때 비교위험도가 3.0 정도 나온다면 복합적이면 1.5-1.3 이렇게 나오거든요. 이렇게 되면 두 개가 오염됐다 하면 오염원은 찾아 내기가 힘들겠죠.
 그래서 내가 미국 있을 때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역학조사를 알아내는가 한 번 봤더니 전부 지역주민이 우기더라구요. 그걸 결국 전문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또 포기 했을 때도 지역주민이 포기를 하지 않더라구요.
 미국에서 백혈병이 발생한 곳에 있는데, 변호사가 돈을 벌기 위해 그 지역에 가 있는데, 나중에 모든 걸 실패하고 적당히 타협하자고 해요. 그랬더니 지역 주민이 ‘우리는 명예를 위해서 일을 해왔다.’ 라고 하자 변호사가 누렇게 뜰 거 아니에요. 그래서 결국 변호사가 모든 일을 접고 그 지역에 직접 상주를 해요. 그러다가 결정적인 단서, 업체가 우물물에 폐기물을 버리는 것을 잡아내요.
‘러브 커낼’ 사건의 경우에도 논란이 많았죠. 결국에 환경부 직원이 갔을 때 지역주민들이 환경부 직원을 인질로 잡죠. 카터 대통령이 가서 중재를 서고 인정을 해주고 해결되었죠. 결국 주민이 해낸 거죠. 어떤 의미로는. 그리고 주민은 아는 거죠. 답을.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나 보니, 김정순 선생님께 배운 덕이더라구요. 김정순 선생님께서 그런 식으로 대개 하시거든요. 직접 가서 조사 하시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첫 날만 가든지 아니면 리포트 만 보고 하는데… 다 쓰잘 데 없는 거죠.
어떤 때의 경우에는 역학조사를 나가서 식단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특별한 게 없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음식이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러 음식이 오염된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식사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의심스러웠던 것을 조리사에게 재연을 해 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음식을 배식 20분 전에 끓여서 이동식 에어컨으로 식히는 거에요. 이동식 에어컨에서 셀로루스 균이 나와서 식힌 음식들이 모두 오염이 된 거죠. 이런 건 직접 재연해 보지 않고는 찾아내기 힘든 거 거든요.


- 전염병 조사, 직업 환경 판정 등 두 분야는 일련 같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분야 인데 어떻게 양쪽 일을 잘 접목해서 다 할 수 있었을까요? 
 환경은 모든 것이 직업병과 연관되죠. 병원병도 직업인거고 농업병도 직업인거고 모든 게 직업과 연관되어 있죠. 그래서 이제는 직업병의 경우 국가에서 관리하게 되었어요. 직업병 심의위원회가 생겼고, 내가 첫 번째 위원이 되었 구요. 그건 내가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환경병 심의 위원도 당연한 거고요.
 임어민병의 경우는 당연히 내가 하는 거다 생각했죠. 내가 농업과 관련되어 있으니까, 농촌 직업병, 농업 센터 등, 농업에 대해 정리하고 한 것은 의사로서 내가 거의 최초일 거에요. 농촌지역보건학회 회장까지 했으니까요.

 농촌을 하다 보니 어촌도 재미있더라구요. 경주도 바닷가가 있잖아요. 별볼일 없는 것 같지만 성게 가시에 찔리면 혹이 생길 수 있는데 진단을 잘 못 받는 경우가 있고, 또 군소 알을 먹으면 감염 될 수 있고, 고둥을 먹으면 사람이 의식을 잠깐 잃을 수 있지만 내버려두면 깨어나요. 고등어 중독이 있어요. 고등어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히스티딘이 히스타민으로 변해요. 그래서 히스타민 중독이 돼요. 그런데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고등어 알레르기로 알고있죠. 이것도 내가 처음으로 보고했죠. 그러다 보니 인수공통감염병에 관여를 하게 됐어요. 이게 어업과 직업병 중간에 있잖아요? 그런데 인수공통감염병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임업인의 경우는 많은 질병이 곤충들에게 물려서 생기는데 진단을 제대로 못 받죠. 그러다가 SFTF (SFTS 바이러스에 감염된 매개진드기에 물려 발생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가 생기니까 이제 진단을 할 수 있게 되었죠. 3년간 임업인 병을 하다가 지금은 이 관 교수가 하고 있죠.
 병원병의 경우 경북의대에 가서 발표까지 했어요. 모든 병원의 노조에 제 책이 있어요. 고용노동부가 병원 노조에 병원병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 내 책을 사용해도 괜찮겠냐고 해서 가만 있었어요.
 전염병의 경우에는, 어느 날 경북에서 세균성 이질이 유행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물이냐 식품이냐 찬반토론을 극렬하게 했는데 나는 그 때 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랬어요. 저는 그 장소에 가자마자 너무나 당연히 물 때문이고 물이 어떻게 오염 되었냐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죠. 그 물이 오염된 게 오수조가 오염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죠. 그랬더니 학교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했죠. 오수조가 오염이 되면 학교가 문제가 되더라구요. 오수조는 학교꺼니까. 그러고 한 달 후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오수조를 다 바꾸라고 했죠. 그리고 같이 가보자 했더니 안 부르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 학교를 가보니 오수조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봤더니 그 때는 사실대로 말하더라구요. 오수조 8개를 팠는데 2개가 새더래요. 그래서 ‘새는 거 어떻게 알았냐’ 하니 오수조를 파내니 주변 흙이 오염되었더라. 그래서 그 흙도 파내고 새로 오수조 공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전국 학교의 오수조가 그럴 거라고… 오수조를 다 바꿔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하더라구요. 그건 이해 했어요. 그 당시는 재정이 넉넉한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오수조들이 곳곳에서 새겠구나. 그래도 아르헨티나까지 오염시키지는 않겠지 했었죠. 하하하


"결국에는 성실 만이 답!"


- 전국 예방의학교실에서 전공의 지원이 없는데 동국의대에는 여전히 전공의 지원자들이 지속적으로 많은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제가 처음 포항 동국대 병원에 왔을 때 실망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보건소장 할 때 ‘실망하면 자기 손해다. 실망하면 떠나야 한다. 있으려면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말부터 긍정적으로 하려고 노력 했어요.
그리고 여기서는 일단 내 것 간섭 받지 않는 걸 좋아했고, 다른 스텝 (임상 교수들) 하고도 불협화음이 없었어요. 스텝 (임상교수들)이 각각인 병원도 있지만 우리의 장점으로는 더 협력하는 거라 생각해서 잘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나름 열심히 하면서 여기저기 연구 발표도 하다 보니까 나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대학에서 더 알려졌더라구요. 내가 다른 대학도 강의를 하러 갔거든요, 강의평가서부터 모든 것이 가장 열악한 곳은 동국대였고, 하하하. 그렇지만 속으로는 ‘동국대가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다’ 라고 생각하였죠. 교육으로 평가 받을 때 동국의대에서 최초로 예방의학 전공자가 교육 평가에서 1등을 했죠.
 내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하였고, 조금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술도 마셨어요. 동국의대에서는 주당 4시간씩 연속 강의를 했어요. 강의가 끝나면 목도 타고 하니까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맥주도 마시고 했죠. 물론 여학생이 있으면 긴장해서 잘 마시지 못했죠. 하하하!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성실히 하다 보니 그런걸 아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누가 논문 평가를 하는 논문을 쓴다고 생각을 했겠어요? 포항병원 같이 문닫은 병원에서, 그것도 지방 대학에서 누가 1등을 했다고 하겠어요? 
 결국에 가서 자기 나름대로 성실하게 하고,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협력하려고 노력하니 되더라구요.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한 것 밖에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자랑스러운 서울의대인 상>을 받았어요. 기뻤어요. 서울대 동문들이 ‘기초 교수이고 지방대 교수 에다 별 보직도 안 한 교수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는데 받았어요. ‘나 치병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줬나?’ 하는 생각도 했죠. 하하하!

"진리를 진리라고 하신 김정순 선생님을 존경"


- 결국은 교수님께서 성실하게 대해 주셨고 학생들 잘 챙겨 주셨고, 또 역학조사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학생들이 전공의 지원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역학조사 이야기에 대해서는 모두 재미있어 했어요.
 영천시에 물놀이 장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피부병이 생기기 시작한 거에요. 시에서는 모든 노력을 했더라구요. 근데 범인이 안 잡혔어요. 결국에는 감염병이라고 의견을 내놓았어요. 그런데 영천시의 모든 피부과의사들은 봤잖아요. 감염병이 아니라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피부과 의사들을 직접 만나야겠다.’ 했더니 보건소장이 ‘그럴 필요 없다. 소독하고 나서 한 번도 피부병 관찰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하는 거에요. 당시 물의 기준을 수영장 기준이 아니라 그냥 일반 물의 기준으로 물놀이 장을 만들어서 그렇게 된 거죠.
 또 한 번은 얼음이 문제가 되는 적도 있었어요. 얼음을 만들어서 쓰는 곳인데, 얼음을 떠서 물에다 넣잖아요. 그런데 설사하는 아이가 물을 마시고 거기다 팽개쳐 버린 거에요. 그래서 얼음 통이 오염되어 있는데 다른 아이가 거기서 또 얼음을 꺼내잖아요. 그래서 문제가 생긴 거죠. 얼음에 의한 식중독은 책에서나 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못 봤는데 일어나더라구요. 대개 얼음은 커피에 넣어 먹는데 커피는 뜨겁기 때문에 식중독이 피해가게 되죠.
  인위적인 사건이 아니면 요인과 질병 발생 간 인과성을 100% 설명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100%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요. 그래서 재현성이 중요해요. 특히 국가적으로 요인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더 말을 안 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럴 때 자기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해요. 요인을 잘 모를 때는 강한 쪽에 서는 거죠. 그런 면에서 늘 자기 고집을 하는 김정순 선생님을 존경하죠. 김정순 선생님께서는 질병 발생에 대한 원인에 대해 항상 한 가지 원인을 고집하셨고 진리를 진리라고 하셨죠.
 그런데 저는 김정순 선생님보다 역학조사를 더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김정순 선생님은 시간과 인력이 있었지만 나는 검진 관련 진료를 하면서 역학조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고 인력도 없었어요. 김정순 선생님은 굉장히 세밀하게 역학조사를 하시는데 나는 그렇게 세밀하게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역학조사를 딱 20분만 하더라도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나는 원인이 독(toxin)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성적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독 일거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접촉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관 하고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하였고, 나는 ‘그게 답!’ 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간호사 기록에 보면 (환자들이) 가습기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고, 환자가 TV 에서 가습기 문제를 이야기 했었다’ 고 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환자 말은 듣지도 않았던 거에요. 항상 답은 ‘거기에’ 있는데 말이에요.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에게 지역사회환자-대조군연구를 하라고 권해줬죠.


- 후학들에게 역학조사를 하거나 전염병 탐정, 직업병 조사 등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반을 가져야 할까? 
  번째는, 다양한 책들을 읽어야 해요. 미국 잡지를 보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어요. 그러나 결론을 알아내는 Clue 는 적혀져 있지 않아요. 소독을 했다 그런데 왜 소독을 했는지는 기사에 자세히 적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왜 사용했는지 등에 대한 뒷이야기도 없어요. 
 식중독이 발생되려면 Bacillus cereus는 음식에 많이 넣어야 되잖아요? (Bacillus cereus 균은 g당 1백만 이상의 많은 수의 균이 존재하여야 하고, 균의 증식을 거쳐 생성된 toxin에 의해 식중독이 발생될 수 있음). 만약 차가운 음식에서 균이 나왔다면, 그럴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Bacillus cereus 균은 섭씨 4도 이하에서 보관할 때 균 증식을 저해하긴 하지만 일부 균주는 섭씨 4도와 같은 낮은 온도에서도 증식 가능하다고 함). 그런데 곰탕에서도 균이 나온다면 그건 불가능한 거죠. 곰탕은 끓여서 바로 먹는 음식이잖아요? 그런데 수도 고장으로 수돗물이 관에 맺혀 있었고, 그래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던 상황이 발생한 거죠. 균이 포함된 물이 곰탕에 떨어지면 균이 죽고 또 떨어지면 죽고 했는데 마지막에 균 일부가 살아 남은 거죠. 곰탕에서 균이 나왔다는 것은 잡지에 적혀 있었지만, 곰탕에서 균이 나온 이유가 수도관에 맺혀있던 물이 곰탕에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 때문이라는 것은 잡지에 적혀있지 않아요.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해요. 미국에는 그런 책들이 많아요.
<의학탐정> ([한국어판] 의학탐정. 버튼 루셰(Berton Roueche), 실사구시실학단, 1998(한국어판 의학탐정은 The Medical Detectives 1988 판의 번안본으로 추리소설임). 또다른 본으로, Sandra Hempel 이 지은 The Medical Detective (부제: John Snow, Cholera And The Mystery Of The Broad Street Pump)도 있으나 한국어판은 아직 없음), 독감([한국어판] 독감. 지나 콜라타(Gina Kolata), 사이언스북스, 2003 (이 책은 Flu: The Story Of The Great Influenza Pandemic of 1918 and the Search for the Virus that Caused It 의 번안본), <메리> ([한국어판] 위험한 요리사 메리 -마녀라 불린 요리사 '장티푸스 메리' 이야기. 수전 캠벨 바톨레티(Susan Campbell Bartoletti), 돌베개, 2018 (이 책은 Terrible Typhoid Mary -A True Story of the Deadliest Cook in America- 의 번안본) 등 여러 책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저들이 질병의 원인을 알려고 노력 했는가에 대한 과정을 재미있게 썼더라구요.
<위험한 저녁식사> (위험한 저녁식사: 의사 탐정들의 의학 미스터리 추적기. 조너선 에드로 (Jonathan A. Edlow), 모요사, 2010 (The Deadly Dinner Party & Other Medical Detective Stories and Other Medical Detective Stories 의 번안본)) 란 책도 매우 재미있더라구요. 거기에 고등어 식중독의 이야기가 나와요. 히스타민 독성 때문에 발생하는 고등어 식중독을 생선 알레르기로 잘못 진단받은 경우가 많아요. (참치, 고등어, 멸치 등은 histidine을 고농도로 보유하고 있어 박테리아에 의해 histamine 으로 변환되는데, 세균 감염된 고등어를 섭취한 사람은 식중독의 일종으로 acute histamine toxicity 에 빠짐). 그런데 그렇게 고등어 식중독으로 진단을 받고 나면 어떤 생선에 또 반응이 일어날지 몰라 다른 생선도 못 먹어요. 영원히 생선을 먹을 수 없다는 거죠. 급성 고등어 식중독인 경우 항히스타민제를 긴급히 투여 받아야 하는데,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Aanaphylaxis) 의 1차 치료제인 adrenaline (epinephrine) 을 투여하면 안된다는 거죠. 잘못된 진단으로 환자만 고생을 할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아요. 

 또 다른 경우인데, 죽어가는 엄마가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황에서 머리에 MRI을 찍었더니 머리에 진드기가 있었어요. 진드기 때문에 죽어 가거든요. 그런데 진드기를 떼어내면 살아나요. 이런 거에 대한 사례는 책으로 라도 접해 보는게 중요하죠. (임현술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Guillain-Barré syndrome 으로 오진할 수 있는 Tick Paralysis 사례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Tick paralysis 는 Tick removal을 시행하면 회복됨).


 라임병을 기술한 <The widening circle> (Polly Murray. The Widening Circle: A Lyme Disease Pioneer Tells Her Story, 1996) 이란 책도 있어요. 이건 폴리 머레이(Polly Murray) 라는 환자 자신이 직접 쓴 거에요. 신경병으로 10년간 잘못 진단받고 이를 쓴 거죠. <Agent Orange on Trial (Mass Toxic Disasters in the Courts)> (Peter H. Schuck) 도 사례 중심의 책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왜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사례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한 경우이기도 하고, 또 공중보건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사례들은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있었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진단되지 않았지만 라임병도 많이 있었을 거에요, 그러나 라임병이 있었을 지라도 모두 진단받지 못한 상태로 사망했을 거에요. 옛날부터 진드기는 야생에서 쭉 살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진드기가 있었고, 진드기에 물려서 진드기 매개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던 거지요. 난 그런 걸 연구하고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두 번째는 경험을 쌓아야 해요. 전염병 조사 던지 직업병 조사 던지 간에 원인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에서 나오는 거죠. 역학조사에서는 무조건 가설을 빨리 세워야 해요. 가설이 있어야 범인 (질병의 원인)을 밝힐 수 있어요. 가설이 틀리면 다 어긋나요. 가설이 맞으면 다 맞아 떨어지잖아요?
역학은 결국에는 철학과도 연결되더라구요. 그런데 또 철학만으로는 원인을 밝히는 데 접근을 못 해요. 의학 하고는 다른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또 윤리가 중요한 사항이 에요. 그리고 법이 또 중요하더라구요. 미국 의과대학에서는 법과 의학이 동시에 가는 dual course 가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지요.


-예전에 교수님께서 처음 시작 하셨을 때 보다는 지금은 국가가 하는 질병관리본부라든지 공중보건의료체계가 많이 나아진 셈이죠?
 고용노동부의 경우 국민을 위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 또한 기여했다고 생각하고요. 환경병의 경우는 단기간에 판단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도 환경부가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요. 모든 경우는 객관적으로 풀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도 독립적이어야 하고, 법, 의사도 독립적으로 다 올바르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다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것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고잔동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지요. 그리고 매향리 사건은 평화 공원이 조성 되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하구요.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어서 좋았지요.
 근로자의 건강을 위하려면 사업체가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규조토폐증을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자고 했는데 안 했거든요. 그게 나오면 회사가 망하잖아요. 회사도 잘 되어야지 근로자도 잘 되고 하는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해요.
 상봉동 연탄공장, 구미의 불산 사건이 터졌죠. 이런 것 들이 다 내 앞에 오더라구요. 탄저병도 경주에서 생겼거든요. 거의 다 내가 연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암은 해 봤자 내가 할 것도 없고 터질 것도 없다고 안 했더니 내가 스스로 걸렸잖아요? 그것도 다 운이겠지 생각해요. 암 걸리고 나서 오히려 좋아했어요. (웃음)  65세 다 넘어서 왔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기쁘더라구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내 상황 때문에 무지하게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하하

-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우선은 ‘실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라고 생각해요. 자기 나름대로 학업을 열심히 하고, 자기를 잘 갖추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저희 때는 감히 생각도 하지 안했지만, 북한이라 던지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나라에서 질병 또는 원인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 직접 가서 논란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사회 알력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일이 아니면 절대 모른 체 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그리고 역시 후배들도 하나의 인간이므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하하


-그럼 반대로 후학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건 좀 어려운 문제네요.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고요.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있어서 모든 것이 100% 올바르지는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올바른 것과 간격을 줄여 가는 방향으로 되어야 하고요. 때때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수를 할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그런 것도 이겨내면서 살아야죠.

"역학이라는 학문이 실천하는 학문이 되길.."


-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역학회에 바라는 점은? 
  한국역학회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심포지엄이나 발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해주면 좋겠더라구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역학조사의 경우 그 논란이 학회 내에서 논의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역학회가 재난 역학조사 등 타 분야에도 확대되길 바래요.
 아울러 역학회가 학회의 특성을 잘 살려서 사회의 알력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연구가 되어야 하고, 외국에서의 연구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연구는 우리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요즘 이차 자료를 접하게 되는데, 실제 이차 자료 수준의 경우 양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질적으로도 밝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전 거의 이차 자료를 쓰지는 않아요. 제가 근로자 검진을 할 때 보면 근로자들은 대개 굶지 않고 와서 검진을 받아요. 그리고 기다리면서 커피도 마시고요. 그런 자료가 이차 자료가 될 수 있어요. 그 자료로 쓴 논문을 보았더니 ‘적어도 8시간 동안 공복을 권유하였음’이라고 적혀져 있어요. 권유는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역학회가 나서서 이차 자료에 대한 질적 평가 같은 것도 해서 질적 수준이 높은 자료를 만들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그 자료로 연계가 되면 좋겠고요.
 역학회를 중심으로 일차 자료를 만드는 일에도 더욱 노력을 해야 될 거 같아요. 수도 중요하지만, 1,000명 정도의 적은 숫자이더라도 질적으로 좋은 자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있지만 공중보건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상으로 시스템이 갖추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학회가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역학조사 결과의 경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라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 당황스럽죠. 그리고 매번 같은 사고가 나고, 같은 질병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역학이라는 학문이 실천하는 학문이 되도록 한국역학회가 노력해 주면 좋겠어요

이전,다음 게시물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글 [인터뷰] 한국역학회 기획 인터뷰 (3) 맹광호 교수와의 대화​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